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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 챙김

정리하다 마주친 물건 하나가, 추억 놀이로 내 삶을 말해줬다

by 다시보기. 2025. 4. 22.

 

정리하다 마주친 물건 하나,  추억 놀이로 내 삶을 이야기하기

 

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던 어느 날이었다.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따라 해 보겠다며 시작한 대청소였지만, 서랍 깊숙한 곳에서 마주친 펜 하나에 내 손이 멈췄다. 먼지가 쌓인 그 작은 물건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내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.

스물두 살 , 친구가 건네준 그 펜은 내 청춘의 한 조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.

그때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그 친구와의 추억,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던 그 시절의 '나'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.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"기억이란 사건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는 매체"라고 했지만, 내 손 안의 이 작은 펜이 그 말을 뒤집어 놓았다. 물건은 기억을 해체하지 않고, 오히려 완전하게 보존해 내게 돌려주고 있었다.

"우리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, 물건이 우리의 이야기를 소유한다." - 장 보드리야르

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은 물건을 줄이고 비워내는 것에 가치를 둔다. 하지만 이 낡은 펜처럼, 어떤 물건들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'감정의 저장고'로서 우리 삶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. 잊고 있었던 나의 한 부분, 열정적이고 두려움 없던 그 시절의 나를 이 작은 펜이 생생하게 불러냈다.

아직도 나오는 이 펜, 시간은 흘러 지금, 내 삶의 모양도 달라졌지만, 그 시절의 감정과 꿈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깨달았다. 정리하려던 서랍은 그대로 둔 채, 나는 그 펜 불러일으킨 기억에 추억에 잠겼다. 

 

프로스트는 『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』에서 마들렌 과자 한 조각이 어떻게 온 과거를 불러일으키는지 이야기했다. 내게는 이 펜 하나가 바로 그런 '마들렌'이었다.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잊고 있던 나를 만나는 여행이었다.

미니멀리즘이 가르치는 물건과의 결별이 아닌, 물건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나는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다. 지금의 나를 만든 모든 순간들, 실패와 성공, 기쁨과 슬픔이 이런 작은 물건들 속에 켜켜이 쌓여 내 삶을 완성하고 있었다.

 

때로는 정리하다 마주친 하나의 물건이,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추억을 선물한다. 그것은 과거에 묶어두는 족쇄가 아니라, 지금 이 순간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시간 여행의 열쇠다. 오늘의 행복은 어쩌면 잊고 있던 어제의 순간들과 만날 때 더욱 선명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.